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산포 해전 (문단 편집) == 의의 == 이순신이 지금껏 해왔던 승전 중에서도 '''가장 높이 평가'''했던 승전으로써 스스로에게 제일 엄격했던 이순신이 이 정도로 만족하며 장계를 올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투임은 두 말할 것 없으므로 대첩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전혀 과함이 없다. 다음은 이순신이 쓴 승전 장계이다. > 전후 네 차례 열 번의 접전에서 번번히 승전을 거두었으나 '''장수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 해전보다 더 큰 것이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적선의 수효가 많아야 70여 척을 넘지 못했사온데 이번에는 적의 소굴에 400여 척의 전선이 늘어선 가운데에서도 (우리 수군이)위풍 당당하게 뚫고 들어가 하루 종일 공격해 적선 100여 척을 격파했습니다. 그래서 '''적들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해지고 목을 움츠리게 하여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비록 수급을 취하진 못하였으나[* 당시 왜군의 수급은 의외로 가치가 꽤나 있었다 장수들에게는 공훈의 증거였고 백성들에게는 관아에 가져다주면 현상금처럼 보상을 받았다. 학자들마다 가치의 기준은 다르지만 당시 1달 병사 급여보다 수급 몇개가 훨씬 가치 있었을 거라는 의견에는 모두 동의한다 그래서 이순신은 수급을 베려다가 적을 놓치는 경우를 매우 싫어했고 염려했기에 부하들에게 "너희의 공로는 내가 낱낱히 조정에 고할건이니 수급에 연연하지 말고 적 소탕에 힘쓰라"고 지시를 내렸고 병사들은 그를 따랐다.] 힘써 싸운 공로는 '''지난 전투에서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 > 부산포파왜병장 이 단 한 번의 해전[* 사실 해전이라기보다는 현대적 의미의 "강습"에 가깝다.]으로 '''하삼도의 일본군은 반신불수가 되었다.''' 이후 1597년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 수군이 궤멸되기 전까지 일본군은 '''그 어떤 곳에서도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평양까지 승승장구하며 진격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그대로 평양에 주저 앉아 있다가 조명 연합군에 밀린 것도 이순신에 의해 해상 보급로를 차단당했기 때문이다. 또 호남 역시 일본군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할 수가 있었다. 이 전훈을 일본군은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유재란 때에는 전혀 다른 전략[* 임란 때에는 빨리빨리 치고 올라가는 게 목표였다면, 정란 때에는 한반도 남부를 점거하여 자신들의 영토로 굳히는 것. 그리고 정란 전략은 방어선에 대한 직접적 침공이 아닌, '''치밀한 이간질로 이순신부터 적 수뇌부에서 치워버린''' 뒤에 직접적으로 쳐들어왔다.]을 세우게 된다. 가히 '''조선군의 대반격'''이라 할 것이다. 또한 부산은 임란이 터진 직후 일본군이 점령하면서 일본의 조선 침략 기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부산이 조선 침략에 있어서 중요한 요지였다는 것이다. 또한 부산은 일본군의 본진이기 때문에 조선 수군이 쉽사리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부산포 해전은 '''적의 본진을 바다에서 타격한 전투'''였고, 이로 인해 본진도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는데 이것은 엄청난 전과이다. 본진이 적에게 위협받는데 함부로 많은 병력을 출정 시킬수도 없거니와 본진을 구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작전 범위도 좁혀질 것이며 이미 출정한 병력들 또한 마음껏 싸울 수 있을리가 없다. 또한 해상로는 전투의 목적 뿐만 아니라 병력과 물자를 실어나르는 수송로도 겸하고 있는데 본진 앞바다까지 적이 쳐들어온다? 물자 걱정은 물론 본국으로 돌아갈때가 매우 염려되고 걱정되었을 것은 너무도 뻔하다.[*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지만 명과 수륙 협동이 이루어져 본진인 부산포를 점령했다면 바닷길도 틀어막힌 상황에서 보급마저 원활하지 않아 왜군들은 철저히 고립되었을 것이고 끝내 항복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따라서 최근 역사학자들은 임진왜란을 끝낸[* 임진왜란이 끝나고 뒤 이어 정유재란이 벌어진 것이다.] 결정적인 전투를 이 부산포 해전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 해전의 승리를 기려, 1592년 음력 9월 1일을 양력 10월 5일로 환산하여 [[부산광역시]]는 10월 5일을 '시민의 날'로 지정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